[유하] 어느 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지갑 속의 학생수첩 2012. 11. 3. 09:47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리라


바람도 찾지 못하는 그곳으로

안개비처럼 그대가 오리라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모래알들은 밀알로 변하리라

그러면 그 밀알로, 나 그대를 위해 빵을 구우리


그대 손길 닿는 곳엔

등불처럼 꽃이 피어나고

메마른 날개의 새는 선인장의 푸른 피를 몰고 와

그대 앞에 달콤한 비그늘을 드리우리


가난한 우리는 지평선과 하늘이 한몸인 땅에서

다만 별빛에 배부르리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

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

햇빛 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

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

꽃가루를 탐하리


가난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란 오직 이것 뿐

어느 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나 그대를 맞으리라








- 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