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훈] 나로부터 나를

지갑 속의 학생수첩 2015. 2. 17. 13:44

난시가 심해지면서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양미간을 찌푸리는 습관이 생겼다. 인상을 잔뜩 써야 일그러진 형상이 뚜렷하게 보여지곤 한다. 요컨데, 바른 표정과 웃는 눈빛으로는 사물이 바로 보이지 않는, 비틀린 시각을 갖게 되었다. 뒤틀린 어법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늘 안개 속의 가시밭길이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의 눈과 귀와 코와 입이 모두 바깥을 향해 달려있다는 거다! 나는 한번도 내 안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그 캄캄한 어둠의 깊이를. 나는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온갖 추악한 언어의 난동을. 내 안에 고여있는 물의 지독한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건 천만다행이건만. 나는 내 안을 향해 말하지 못한다. 오, 가엾다고.

부디 나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

 

 

 

- 이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