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정해종] 방전하는 밤
지갑 속의 학생수첩
2015. 2. 12. 15:47
틀림없이 걸어 잠그고 누웠는데
누가 내 의식의 빈틈을 기어 들어와
수도꼭지를 비틀어 놓았는가
수챗구멍으로 물 빠지는 소리 들려오고
밤새 꿈이 젖고 몸이 젖는다
가만 있으면 뭔가 자꾸 빠져나간
다머리통에서 머리털이 빠져나가고
두개골에서 기억이 빠져나가고
팔뚝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혈관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뼈대에서 칼슘이 빠져나가고
술이라도 취해 정말 맘놓고 잠들었다간
하루아침에 산송장이 되리라
누군가 내 꿈속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
텅 빈속이 간밤을 의심하는 아침마다
꿈은 빛에 드러난 필름처럼 녹아내리지만
누구의 것일까, 채 지워지지않고
남아 있는 저 발자국
-정해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