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크고 단단한 체격을 가진 건장한 사내이다. 하지만 이미 망가진 사내이다. 그는 종일 명동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무엇인가 끊임없이 연설하고 있다. 그의 말에는 곡 필요한 부분에 억양과 악센트와 제스처가 들어가 있고 진지한 표정도 있다. 잘 짜여진 문법과 의미 구조의 틀도 갖추고 있다. 그의 말은 너무나 멀쩡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잠시 멈춰서서 귀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결국엔 알 수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지나간다.
맘가진 마음속에 말이 있다. 말이 그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단지 입술과 혀와 이와 목청이 오랫동안 말을 해왔기 때문에, 그는 말을 한다. 그러나 말은 나오자마자 공기에 싸여 사라진다. 그래도 그는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매일 세 끼 밥을 먹기 때문이며, 밥은 모두 망가진 마음으로 ㄷ르어가 말과 똥이 되기 때문이며, 똥이 몸에서 나와야 하는 것처럼 말도 입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말은 멀정한데 마음만 망가진 사람, 얼굴은 멀쩡한데 표정만 망가진 사람, 눈은 멀쩡한데 눈빛만 망가진 사람, 몸은 너무나 튼튼한데 손짓 몸짓 걸음걸이 그리고 걸음이 가고 있는 방향만 망가진 사람.
한때는 저 말들을 꽉 쥐고 놓지 않던 튼튼한 마음이 있었으리라. 그 마음은 꼭 피요한 때에만 말이 나가도록 입을 통제했으리라. 술이 들어가면 그 힘은 다소 풀려 얼마의 말들이 빠져나가기도 했겠지만 평상시엔 굳게 다물고 있었으리라. 무엇일까, 그 정교하고 튼튼한 장치의 끈을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버린 힘은, 저 건장한 사내를 떨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완벽하게 망가뜨린 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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