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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고세훈] 조지 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 그가 죽고 2년이 지나 출판된 에세이 「그런 기쁨들」에는 가난으로 인해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그가 겪었던 '굴욕들'이 끝없이 나열돼 있다. 학교는 그에게 죄란 반드시 그가 범한 무엇일 필요가 없으며 권력과 덕성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었다. 오웰은 "가난한 집 아이를 가장 확실히 망치는 방법은 부자학교에 보내는 것"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리고 수치와 죄의식의 트라우마는 평생 그를 따라다니게 될 터였다. - 1931년 성탄절 직전에는 구치소에 들어가기 위해 빈속에 위스키를 병으로 마시며 일부러 경찰 앞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당시의 구치소 경험을 글로 옮긴 것이 인물들을 통한 시대묘사가 백미인 「구치소」이다. 가령 오웰은 피의자 한 사람이 "무서운 것은 감옥이 아니라 직장을 잃는 .. 더보기
[김연수] 막 청춘의 절정이 지나갔다 - 내게 청춘이란 7월 중순, 평일 오후의 테니스장 같은 이미지다. 뜨겁고 뜨겁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라 코트는 거의 비어 있다. 땅에서는 햇살의 열기가 고스란히 다시 올라온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라켓으로 공을 때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한가롭게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문득 조금 전까지 여름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절정을 지나 여름이 내게서 막 떠나가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약간의 아쉬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붙잡고 싶은 욕망은 들지 않는 그런 순간. 내게 청춘이란 그런 것이었다. - 여름도 한복판에 이르러, 뜨거운 햇살 때문에 블라인드를 친 베란다에 앉아 있는 일마저도 버거워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정말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번역을 끝마쳤.. 더보기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혹은 용서받지 못할 욕망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질문은 묻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의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왜 그렇게 취업하려고 노력하니?"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 다중적 주체인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모든 정체성은 차이를 가로질러 형성된다. 여성주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미 체계 중 하나이며, '여성주의자' 역시 나를 설명하는 다양한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여성주의는 세상 모든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 나는 여성으로 간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