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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농담 그대 내 농담에 까르르 웃다 그만 차를 엎질렀군요 ... 미안해하지 말아요 지나온 내 인생은 거의 농담에 가까웠지만 여태껐 아무 것도 엎지르지 못한 생이었지만 이순간, 그대 자스민 향기같은 웃음에 내 마음 온통 그대 쪽으로 엎질러졌으니까요 고백하건대 이건 진실이에요 - 유하. 더보기
[최승자] 雨日풍경 비 떨어지는 소리, 위에 떨어지는 눈물. 말라가던 빨래들이 다시 젖기 시작하고 누군가 베란다 위에서 그 모든 기억의 추억의 토사물들을 한꺼번에 게워내기 시작한다 -최승자. 더보기
[마종기] 전화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 마종기. 더보기
[유하] 어느 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그대가 오리라 바람도 찾지 못하는 그곳으로안개비처럼 그대가 오리라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모래알들은 밀알로 변하리라그러면 그 밀알로, 나 그대를 위해 빵을 구우리 그대 손길 닿는 곳엔등불처럼 꽃이 피어나고메마른 날개의 새는 선인장의 푸른 피를 몰고 와그대 앞에 달콤한 비그늘을 드리우리 가난한 우리는 지평선과 하늘이 한몸인 땅에서다만 별빛에 배부르리 어느 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빗방울처럼 그대가 오리라 그러면 전갈들은 꿀을 모으고낙타의 등은 풀잎 가득한 언덕이 되고햇빛 아래 모래알들은 빵으로 부풀고독수리의 부리는 썩은 고기 대신꽃가루를 탐하리 가난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란 오직 이것 뿐어느 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지평선과 하늘이 입맞춤하는 곳에서나 그대.. 더보기
[강성은] 방 옆으로 누우면 벽 똑바로 누우면 천장 엎드리면 바닥이었다 눈을 감으면 더 좋았다 가끔 햇빛이 집요하게 창가에 걸쳐 있다 돌아가곤 했다 - 강성은. 더보기
[나희덕]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헛되이 던진 돌멩이들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나희덕 더보기
[신현림] 정들 네게 이 노래 띄운다 얼음 위에 댓닢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 죽을 망정얼음 위에 댓닢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 죽을 망정정든 오늘 밤 더디 새 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고려속요 [만전춘별사] 가 좋아서사랑의 절실함이 눈물겨워서정들 네게 이 노래 띄운다붉은 철쭉꽃 만발하는운우지정이 아니어도 좋고이별이 내일이어도 좋아이 순간함께하는 이 순간너의 손너의 입술너의 말이 스치는 곳에내가 숨쉬고먹고살 근심 속에거울 보듯 마주하는 이 순간시간은 멈추고흰 눈흰 싸리꽃 펄펄 날린다 - 신현림. 더보기
[김경후] 장마 벼락 속 내리치는 빗발그렇게오랫동안우산이 필요한 영혼은 이제 내게 없다 - 김경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