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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

- 9.11에 죽은 여자를 추모하며

 

110층 화염의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여자는 핸드폰을 목숨처럼 껴안고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두 신발에 오렌지색 불이 붙은 것을 느끼면서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꼭두서니빛 불타오르는 화염으로 치마를 물들이면서

너를 사랑했으며 너를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엉덩이를 다 먹고

허리 한복판을 너울너울 화염이 베어먹는 것을 느끼면서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이 불타는 허리 이 불타는 등줄기 이 불타는 모가지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누구나 자기 무덤을 만들 시간은 없지만

너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여자는

난폭한 머리카락 난폭한 두 귀가 갈기처럼 일어서는 것을 느끼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죽지 마, 죽어선 안돼, 라고 연인이 말할 때

불길이 그녀의 하얀 두 손을 먹고 핸드폰을 녹여버릴 때

그때

바로 그때까지

죽어선 안돼, 절대로 안돼,라는 연인의 말이 전해진

귀 두짝을 소중히 움켜쥔 채

110층에서 떨어진 여자는

!

 

 

 

 

 

 

-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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