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을 보면 사람들이 쑤군거리지
사람 떠난 집은 금방 허물어지거든
멀쩡하다가도 비워두면 곧 기울어지지
그건 말이야 사람이 독해서야
벽과 기둥을 파먹는 것들
돌을 갉아먹는 이빨 날카로운 시간들
사람 사는 걸 보면 질려 달아나지
삶이 독해서야 그건
그랬지 내가 허물어지던 때마다
내게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였지 그땐
나를 구원하러 온 것마저 나를 허물었지
타인의 욕망이 나를 버티게 하는 나의 욕망에 대해 무지했었지
사람이 빠져나가고 이념만 남은 마을을 본 적이 있지
사람이 빠져나가고 풍요만 남은 마을을 본 적이 있지
사람이 빠져나가고 이상만 남은 마을을 본 적이 있지
삶의 하찮은 몸짓들 하찮은 욕망들 하찮은 구원들
그 비루하고 모진 기득권들이 빠져나가면 곧 허물어지지
나는 집을 떠나려고만 했지
수십년째 집을 떠나려고만 했지
굼벵이처럼 비루한 것이 싫어서 그랬고
슬퍼서 그렇게 하지 못했지
사람의 모진 것들이 자꾸 슬퍼서
-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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