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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고양이가 울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동네 골목에 살았다

검은 비닐봉지와 살았다

 

검은 봉지 부풀면 그것에 기대어 잠들었고

검은 봉지 위로 빗물이 떨어지면

그것을 핥아 먹으며 살았다

 

어느 날 검은 봉지가 사라졌다

바람에 날리기도 하였을 것이고

누군가 주워가기도 하였을 것이나

아주 어려서부터 기대온 검은 봉지를 잃은

고양이는 온 동네를 찾아 헤매다

죽을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검은 봉지를 형제 삼아 지내온 날들

고양이가 울었다

잠든 형제를 위해 자꾸 자리를 비켜주던 날들

뼛속으로 뼛속까지 바람이 불었다

 

 

 

 

 

 

-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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